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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graphed by Kwon Tae Gyeong

#3 가일아트 석채 워크숍 방문기

2024.9.20

도쿄 화방을 다녀온 이후, 한국의 채색 재료를 체험하기 위해 7월 30일 가일아트 양평지사를 찾았다. 이 곳에서 작가들은 전통 채색의 대표 재료인 석채를 원석에서부터 직접 제조하는 과정을 경험할 수 있었다. 석채는 모사와 복원 등에서 주로 사용되지만, 비용이나 활용성의 이유로 작품에 사용되는 경우가 드물다. 이번 파트에서는 작품 제작의 주체인 작가들의 입장에서 기술한 가일아트 방문기와 석채 워크숍 후기를 공유한다.

​권태경
 

2024년 7월 30일, 양평에 위치한 가일아트 워크숍 현장을 방문했다. 1층에는 갖가지 종류의 석채 원재료와 완성된 석채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아직 워크숍이 시작되지 않았는데도 진열된 원석과 재료들만으로 여러 가지를 알 수 있는 공간이었다.

평소 나는 튜브물감을 주로 사용하고, 그 외에 분채와 봉채, 안채를 몇 번 사용해 본 적 있는 정도였다. 석채에 대해서는 비단 작업에 주로 사용한다는 것과 돌을 갈아 만든 안료라는 것 두 가지만 알고 있으며, 사용해 본 적은 없는 상태였다. 워크숍 초반에는 가일아트 대표님께서 분채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각 원석으로 어떤 색깔의 석채가 되는지, 그 원석의 특징은 무엇인지, 어떤 화학적 반응을 통해 변화하게 되는지 등을 알려주셨다. 호분에 대해서도 검색만으론 알 수 없는 정보들을 알려주셨다. 한 원석으로 수많은 단계의 색을 뽑아낼 수 있다는 것도 새롭게 알게 된 점이었으며, 막연히 돌가루이기에 입자가 거칠 것이라는 편견 또한 깨지는 시간이었다. 설명을 듣고 난 후에는 여러가지 색의 석채와 편채라고 불리는 염료를 테스트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편채 또한 처음 알게 된 물감이었는데, 이 편채는 안료와는 다른 염료라는 재료다. 안료(pigment)는 일반적으로 물이나 기름, 알코올 등에 녹지 않아 그 속에 분산시켜 입자 상태로 사용하는 색소를 말하며, 석채와 분채 모두 안료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이와 달리 염료는 물과 기름에 입자가 녹아 사라진 상태로 사용하는 색소라고 볼 수 있다. 한지를 포수하지 않고, 맑은 농도의 물감을 염색하듯 수차례 입혀 그리는 방식을 사용하던 내게는 정말 보물을 발견한 느낌이었다. 그 중에서도 천연 쪽으로 만든 편채인 청화는 어찌나 색이 맑고 고운지, 10g에 35000원이나 하는 비싼 가격에도 3병이나 구매해버렸다. 

석채에 대한 설명과 테스트 시간을 가지고 난 후에는, 석채를 직접 만들어보는 워크숍을 진행했다. 원하는 색을 고른 후, 주가 되는 색 이외의 돌조각을 작은 핀셋으로 골라낸다. 더 세심하게 골라낼수록 더 깨끗한 색이 나오는 듯 했다. 다 골라낸 후에는 사발에 돌조각을 넣고 물을 섞어 갈아준다. 처음에는 탁한 색이 나오는데, 물을 섞어 땟물을 빼주고 다시 갈아주는 과정을 반복하면 점점 맑고 고운 색이 나온다. 모든 과정은 매우 세심하면서도 힘든 노동이 필요했다. 특히 돌조각을 골라내는 것은 가장 시간이 많이 드는 과정이었는데, 상품을 생산할 때도 기계가 대신 해줄 수 없어 사람이 직접 해야한다고 했다. 석채가 비쌀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갈아주는 과정을 끝내고 건조를 거쳐 나온 석채는 굉장히 작은 양이었다. 기나긴 수고로움을 거쳐 나오는 양이 손톱만큼이니, 그렇게 비쌀 수밖에 없었다. 이번 워크숍을 들으면서, 내가 쓰는 안료에 대한 이해가 얼마나 없었는지, 모르는 안료에 대해 얼마나 보수적인 태도로 작업을 해 왔는지 알 수 있었다. 튜브물감을 선호하고, 분채를 불호하는 것에 대한 원론적인 이해를 얻으니, 어떤 재료를 어떻게 탐색해나가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있었다. 단순한 재료 탐색이 아닌, 재료에 대한 이해가 선택으로 연결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며, 뭐가 더 나에게 맞는지 아닌지를 알고 선택하는 것과 모르고 선택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아란

한국화에서 전통재료는 시간성이라는 특징과 연결지어 생각하게 된다. 전통 재료의 사용이 시간에 따라 어떻게 변하며, 그로 인해 작품이 어떤 의미와 가치를 가지게 되는지를 생각하면서 사용하게 된다. 여기서 전통재료란 주로 자연에서 얻어지고, 옛날부터 오랜 시간 동안 사용되어 온 재료들을 의미한다. 모든 재료들은 그 자체로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를 겪는다.

그 중에서 전통재료, 특히 석채는 천연 광물에서 얻은 안료로, 인간의 생의 속도로는 인지하기 어려울 정도로 색상 변화가 미미하고 자연스럽게 나타난다. 가일아트에서는 다양한 전통재료를 취급하고 있으나 특히 천연광물 원석을 직접 가공하여 석채를 제조하고 있다. 이번 방문을 통해 원석을 분류하고 빻아 만들어 보는 작업을 했다. 남동광에서 석청을 만들어 보는 과정을 선택했고 원석 분류를 시작했다. 어느 정도 골라낸 원석을 막자사발에 넣고 물과 함께 갈았다. 불순물들을 과감하게 물에 띄워 따라내길 여러 번. 하고 나니 순도가 높지 않아 수율이 30% 정도도 안되는 듯 보였다. 모든 과정이 기계화 되어 있을 것이라 짐작했으나 인력이 꼭 필요한 과정들이 있었고 그 공력을 생각하면 고가의 석채가격이 이해가 되었다. 남동광을 고른 다른 팀들과 비교를 해 보니 불순물이 걸러진 정도에 따라 색상이 미묘하게 달랐고, 다른 그 자체로 제각각 색이 아름다웠다. 불순물으로 분류된 원석도 고대청이라는 색상의 석청으로 재탄생한다. 오히려 그 자연스러운 색상이 불화 복원을 할 때 잘 어울린다고 한다. 과거의 제조기술과 오히려 근접해서 색이 잘 어우러질 수 있겠다고 짐작해 본다.

모사공 교육원과정과 모사자격증을 따기까지 여러가지 공부를 하고 현재도 전통방식으로 영정초상작업을 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전통 재료를 사용한 작품은 그 자체로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매개체가 되는 것 같다. 이러한 재료들은 수백 년 동안 사용되어 온 만큼, 그 맥락 안에 담긴 문화적 의미와 전통은 시간이 지나도 계속해서 전해질 것이다. 재료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문화적, 예술적 의미와 가치를 내포하고 있기에, 전통 예술의 깊이와 고유성을 이해하고 현대에 그 의미를 새롭게 조명하는 데에 중요할 것이다.

현승의

동양화 매체를 기반으로 하면서 동시대 회화에 몸담고 있는 작가에게 전통 재료라는 것은 골치아픈 문제다. 전통이라는 단어 자체가 모호하거니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전통으로 규정할 것인가도 애매하기 때문이다. ‘동양화 재료=전통 재료’ 라고 이해하는 사람들도 더러있지만, 사실 따지고 들어가면 전통 재료라고 불릴 수 있을 만한 것들은 상당히 제한적이다. 전통 방식으로 소나무를 태워 그을음을 모아 만든 고급 먹이나, 천연석을 곱게 빻아 만든 석채 정도의 ‘근본’은 되어야 비로소 전통 재료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작가 입장에서는 비싸고 상대적으로 접근성이 떨어지는 전통 재료보다 저렴하게 개량된 현대식 재료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고, 정작 전통 재료에 대한 이해도가 많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면 전통 재료로부터 파생되는 수많은 현대식 재료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사용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그러니 나를 비롯한 동양화 매체를 사용하는 작가들에게 있어 재료 탐구는 가장 시급한 문제일지도 모른다.
 

양평에 위치한 가일전통안료(이하 가일)는 그러한 시급함을 해결하기 위해 찾아간 장소 중 한 곳이었다. 사실 대학생 시절 수업의 일환으로 가일에 한 번 방문한 적이 있었다. 수많은 광물들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져서는 정신없이 질문을 던지곤 했는데, 당시의 경험이 나의 미미한 재료 지식에 그나마 보탬이 되었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이번에 다시 방문한 가일은 여전히 색색의 석채로 진열장이 꽉 채워진, 보기만 해도 시각적 만족감이 넘쳐흐르는 장소였다. 그곳의 광물들은 수입되는 것들이 대부분이었지만 뇌록석은 포항에서, 석간주는 울릉도에서도 채굴이 된다고 했다. 언젠가 그런 재료 원산지도 방문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빠르게 메모장에 기록해 두었다. 나는 지퍼백에 담긴 개량된 가루호분을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호분에 대한 질문을 특히 많이 했다. 사장님은 가루 형식은 인공적인 안료로 배합하는 경우가 많으니 되도록 칩 형태의 상자호분을 사용할 것을 나에게 권하셨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편하게 개량된 재료일수록 감안해야 할 것들이 많은 법이라는 것을 다시금 느낄 수밖에 없었다. 수정으로 만든 수정말, 방해석으로 만든 방해말같은 천연 백색 안료도 추천해 주셔서, 이 또한 조만간 연구해봐야겠다는 결심이 들었다. 분채의 경우 베이스는 호분이지만 주로 인공안료로 착색을 하기 때문에 나중에 쉽게 색이 변질된다고 했다. 이 세상에 천년만년 완벽하게 보존되는 안료가 어디 있겠냐만은, 작품이라는 물질을 만들어내는 사람으로서 이후의 보존성에 어느 정도 책임감을 가지는 태도도 필요하겠다고 생각했다.

이후에 진행된 석채 만들기 체험은 노동의 연속이었다. 일일이 잡석을 골라내고, 물을 부어 유발에 갈고, 땟물을 정기적으로 갈아주는 그 모든 일에 들어가는 품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아무리 기계화 되었다지만 섬세한 공정에서는 사람의 노동력이 많이 필요하니 석채의 가격이 높을 수밖에 없을 터였다. 사실 석채뿐 아니라 다른 전통 재료들도 이런 공력 때문에 값이 널을 뛰는데, 비싸다고 바로 손사래를 칠게 아니라 왜 값이 비싼지, 어떤 재료로 어떤 공정이 들어가는지를 이해하게 된다면 결코 가볍게 넘기지 못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일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전통 석채를 만드는 곳이다. 한 군데밖에 없다는 점이 애석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이 정도 기업이 유지되고 있다는 것 자체가 그나마 위안이 되기도 했다. 전통 재료의 수요가 적은 편이고, 거기에 재료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가 부족한 현상이 결합돼 전통재료산업이 계속 사양길을 걷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정확한 지식을 바탕으로 전통 재료를 이해하고, 작업 재료의 선택지를 더 풍부하게 만든다면 작가로서 조금이라도 이 산업생태계에 보탬이 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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